판단중지(epoch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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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신후 (우송대학교 IT융합학부 교수) 2021.03.05
우리들 대부분은 자신의 경험을 있는 그대로 놓아두지 않고 사전에 만든 구조와 평가 체제에 맞추어 끼워 맞추고 왜곡하며, 그 틀에 맞지 않으면 화를 낸다. 마음을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에 열어 두고 실제로 그것이 어떤 구조를 가졌는가를 발견하는 일은 건강하고 성숙한 삶의 특성의 하나이다.(칼 로저스, 1961)
현상학에서는 현상phenomenon에 대한 기존의 모든 가정을 일시적으로 중단하도록 질의한다. 이러한 방법을 '에포케'epoché라하며 이를 통해 자연적인 세계로부터 현상학적인 본질로의 현상학적 환원을 한다고 본다.
우리가 안다고 하는 것은 각자의 지도를 통해 아는 것이다. 개개인의 지도는 선험적 지식에 살아오면서 체험한 모든 것이 입혀져 만들어지며 이를 근간으로 내가 "안다"고 말을 하게 된다. 고객이 말한 '힘들다'는 내가 알고 있는 힘듦과 같을 수 없으며, 고객이 '좋다'고 말할 때 나는 내가 체험한 모든 것을 바탕으로 '좋다'는 의미를 이해 한다. 그러나 그 좋음은 고객의 그것과 같지 않다. 내가 나의 옷을 입고 입는 한 나는 고객이 말한 의미를 알지 못한다.
현상학적 접근은 이렇게 내가 기존에 알고 있는 모든 것을 괄호로 묶고, 내가 알고 있다는 가정을 중단하는 것, 즉 판단중지(bracketing)이다. 이러한 판단 중지가 되지 않으면 나의 에고는 나를 감싸고, 본질적으로 고객을 오롯이 하나의 존재로 마주하기 어려워 진다.
부모의 삶은 자녀의 삶과 결코 같지 않다. 지금 자녀의 시간은 부모가 지나온 어린 시절과 같지 않으며, 같은 체험을 쌓아가지도 않는다. 그러나 때때로 부모는 먼저 살았고, 먼저 경험했다는 이유로 자녀의 체험을 무효화하려고 시도하게 된다. 그 순간 하나의 소우주인 자녀의 존재는 부모의 체험 속에 묻혀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그 존재가 부정된다.
말이안되고 우스꽝스럽고, 때로는 공격적인 자녀의 행동은 그 자체로 정당하며, 지금 이순간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내가 아는데.."
"그건 네가 ... 하려고 그러는 거잖아."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판단은 기준을 요구한다. 내가 하는 판단의 기준은 항상 '나'로 부터 나온다. 객관적 기준 혹은 사회적 기준으로 보이는 것 조차 그러한 기준을 수용한 나의 기준에서 시작된다. 이러한 나의 기준을 괄호로 묶고 잠시 밀쳐 놓을 수 있다면 '판단'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자녀의 온전한 존재가 자리하게 된다.
성찰질문:
1. 나는 아이를 온전한 존재로 보는가?
2. 나는 내 아이가 나와 다른 자기만의 삶의 기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가?
3. 판단중지를 위해 나는 오늘 무엇을 괄호 속에 넣을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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