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윤경 공감DNA충전소 파트너 코치/ICF 코치아챕터 회원관리위원. 2021.10.05.)
나는 어릴 적 엄마와 함께 병원에 가면 진료를 받기 전 대기실에서 차례를 기다리다 그곳에 함께 온 아이들에게 다가가 “너는 몇 살이니?” 혹은 “어디에 살아?” 이렇게 물어보곤 했다고 한다. 그런 어릴 적 모습을 기억하는 엄마는 지금 내가 여러 사람 앞에서 떨지도 않고 강의하는 것은 그러한 외향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어려서부터 사교성이 좋다고 늘 이야기 하는 엄마의 말대로 나는 외향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믿고 그렇게 살아왔다. 그러나 나도 강의를 할 때마다 긴장되고 떨리는 마음으로 그 자리에 나아가곤 한다. 강의가 있는 그 몇 일 동안은 신경을 모두 곤두세워 긴장감이 온몸으로 표현된다. 나에게도 남들 앞에 나서는 것이 힘든 내향성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엄마는 여전히 나의 내향성을 모르고 있다.
부모가 되어 아이를 키우면서 나도 엄마처럼 자녀에 성격에 대해 일방적인 안경을 쓰고 있었다. 아이가 4살 때 63빌딩 수족관에 가족과 함께 관람을 간 적이 있었다. 그곳에 작은 무대가 설치되어 있었는데. 아이는 음악소리가 나자 무대 위로 올라가 양팔을 저으며 지휘를 하기 시작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박수를 쳐주고 아이는 더 신이 난 듯 열심히 지휘를 하였다. 난 이 모습이 아주 강하게 기억되었다. 그 이후로도 아이가 무대에 서는 것을 좋아한다고 생각했고 누구나 할 것 없이 두루두루 친구를 사귀는 사교성 있는 아이로 생각했다. 나 또한 엄마와 같이 아이가 외향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기에 사람들 앞에 서는 것을 즐긴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아이가 성장하면서 내가 모르는 또 다른 아이의 성격을 보게 되었다. 그때부터 나는 아이가 혼자 있는 것을 즐기며 조용한 것이 걱정되기 시작하였다. 주변에 친구들과 어울리기를 바라며 친구들을 집에 초대하곤 했다. 그러나 아이는 그런 친구들을 돌려보내는 것이다. 또한 나의 지인이나 어른들을 만나면 나의 뒤로 숨어버리는 것이다. 이런 아이의 행동에 나는 어른에게 인사를 하라고 시키곤 하였다. 하지만 아이는 혼자서 보내는 시간이 즐거웠고, 낯선 사람들을 만나면 부끄러워 인사를 하지 못한 것인데. 어린 시절 아이가 나에게 보인 그 한 번의 사건이 나에게 우리 아이는 외향적인 성격이라는 안경을 씌우게 된 것이다. 그 안경을 쓴 나는 아이의 다른 모습은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아이는 지속적으로 나에게 자신의 내성적인 성격도 보였을 것인데 부모로서 한 가지 모습만 보고 아이의 변해 버린 성격을 고쳐주려고 노력하였다.
여기서 내가 저지른 오류는 첫 번째, 성격이라는 무지개 같은 것을 어느 것 하나 단정 지어 외향적, 내향적이라고 말한 것이다. 이 둘을 구분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는 것인데 나는 부모로서 일방적으로 자녀의 성격을 구분 지은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 부모로서 미쳐보지 못한 자녀의 모습을 왜곡하며 고쳐주겠다고 한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부모가 쓰고 있는 성격의 안경을 벗어 버리고 부모가 보지 못하는 자녀의 모습까지 살펴볼 수 있는 안경을 써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는 이 두 힘이 조화롭게 발현되도록 조력하는 부모가 되는 것이다.
성찰질문 나는 자녀의 어떤 모습을 보고 있는가? 부모가 모르는 자녀의 모습을 볼 준비가 되어 있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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