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소박한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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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2021-08-21 00:13 762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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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경 옥
ICF 코리아챕터 감사, 전문코치(KPC), 광신대학교 복지상담융합학부 사회복지학과 초빙교수.


나의 몇 가지 꿈 중에 하나인 좋은 할머니가 되는 것은 손주들의 바램과 현 상황에 맞춰야 하므로 세심한 관찰과 정성과 상황에 따른 변신이 필요하다. 그중에서도 순간순간 남동생 셋의 뒷바라지를 돕는 큰 손주 우연이는 나의 고객 1호이다.

퇴근 후, 함께 요가학원에서 운동을 마치고 나오면서
“할머니 오늘 서점에 갈 수 있을까요?”
“할머니 오늘 문구점에 갈 수 있을까요?”

언제나 대기 중인 나의 대답은 늘
“그럼! 그럼!”이다.

서재에서 집중하고 있으면 찾아와 요청한다.
“할머니 색종이 있어요?”
“할머니 색지 있어요?”
“할머니 풍선 있어요?”

손주들이 자주 드나드는 나의 교육자료 방에는 갖가지 모양의 풍선, 크고 작은 샌드페이퍼, 다양한 색지, 색연필, 크레파스, 자석칠판, 감정카드 등으로 가득하다. 매주 한 번쯤은 지역의 문구점을 둘러보며, 간혹 대형마트에 가는 일이 생기면 꼭 문구류 파는 곳에 들러서 새로운 트렌드를 확인하고 구매해 둔다. 강의할 때 준비할 부재료이기도 하지만 손주들의 기호에 맞게 준비해둔다. 그래서 나는 해결사이고 나의 대답은 늘 “그럼! 그럼!”이다.

또래 아이들 형제자매가 외동이거나 두 셋 정도라서 동생들까지 돌보아야 하는 첫째 손주 우연이는 친구들에 비해 동생들이 많은 편이다. 그래서 나는 온전히 우연이에게 힘을 보탠다. 동생들 투정을 받아주다가도 동생이 울면 첫째 손주가 뒤집어쓰고 혼날 때가 있다.

시무룩한 우연이에게 나는 “아이구, 우리 너그러운 우연이가 힘들었구나.” 라고 마음을 읽어주곤 한다. 우연이는 할머니에게 인정받으면 쉽사리 기분이 풀린다. 우연이는 언제 혼났을까 싶게 우는 동생에게 다가가서 등도 토닥여주고 훨씬 의젓하고 너그럽게 말하는 긍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손주와 얘기하면서 나도 나의 어린 시절의 추억을 되살리곤 한다. 평소 기억하지 못했던 무의식의 저장고에 보관된 미해결과제들이 간혹 모습을 드러낸다. 하나씩 의식선상에 올려놓고 그때 그 상황을 만나면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내곤 한다. 무엇보다도 기쁜 일은 손주를 만남으로서 나의 내면의 상냥함을 회복하는 것이다.
  
어떤 수식어보다 ‘탁월한 우연이’라고 불러주면 참 좋아하는 우연이는 그림그리기를 좋아한다. 어릴 때 연필을 잡을 수 있게 되자 하얀 전지에 아이를 앉혀두고 크레파스를 펼쳐 주었다.

처음에는 크레파스를 손에 잡고 선을 긋고 원을 채우며 좋아라했다. 그림이 점차 선에서 면으로 발전하더니 서서히 형태를 갖추기 시작하였다. 무엇보다도 전지 한 장을 그림으로 채울 때까지 집중하는 모습은 가히 장원감이다.

전지에 앉아서 그림을 그리며 놀던 우연이가 반지, 사절지 크기로 점차 작은 종이에 섬세한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되었다. 우리집 하얀 벽에는 우연이 그림이 날짜와 서명까지 더하여 여러 장 붙어있다. 정말로 그림을 좋아하게 되면서 스케치북에 세밀화 그림을 그리는데 전체를 보고 부분을 그리는 역량이 탁월하다는 말을 듣곤 한다.

과학 책을 읽고 마인드맵으로 요약하고 정리할 줄 아는 우연이는 버츄카드 뽑기를 하고 맘에 드는 글귀를 필사도 한다. 그리고 그 느낌을 이미지로 그리고 크레파스로 색을 칠한다. 자신의 생각을 말과 글로, 이미지와 색상으로 표현할 줄 아는 우연이가 대견스럽다. 일상에서 다듬어진 자율성과 주도성은 앞으로 위대한 일을 할 수 있는 반석이 될 것이다.

언젠가 우연이가 “할머니는 내편이지요?” 묻자 지체 없이 “그럼! 그럼!” 하고 대답한 적이 있다. 며칠 후 며느리가 말하기를 요즘 우연이가 부쩍 “할머니는 내 편이야” 말하곤 한단다.
네 살까지 엄마사랑을 독차지하다가 이제 동생이 셋인, 10살배기 우연이가 정작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

“할머니는 내편이야”라고 말하면서 어쩌면 스스로 자가 치유하고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사랑스런 우연이를 위로하고 싶은 마음을
‘우연이의 귀여운 슬픔’이라는 자작시에 담아보았다.

동생 생길 때마다
멀어져 가는 엄마
동생들이 사랑스러운 만큼  
귀여운 슬픔 쌓인다

우연아
동생 생길 때마다  
엄마 사랑은
너에게 더 가까이 가는 거란다.
가슴에 손 얹어봐

엄마사랑은
첫째에게 맡겨놨단다.

요즘, 나는 부모, 조부모들을 만나면
‘아이들과 친해지는 비결이 무언가?’물어보곤 한다.
그들의 이야기 속에 담긴 비결이 다양한 빛깔로 이미지로 나에게 다가온다.
그들이 나에게 되 물으면 ‘지금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한결같이 평온한 할머니가 되고자 한다.’고 답한다.

힘들고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 필요한 단 한 사람이 있는가?
죽음 앞에서도, 떠오르는 단 한 사람이 있으면 살아내는 힘이 생긴다고 했다. 혹여 힘들 때, 떠올릴 수 있는 누군가의 단 한사람이 되고 싶다.

너그럽고 상냥하고 탁월한 우연이를 떠올리며 앞으로 펼쳐질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그려본다. 손주들이 나를 필요로 할 때, 그 순간 그대로 인정하고 존중할 수 있도록, 지금 이 순간, 나의 마음이 평온한지 수시 점검해둔다. 그리고, 좋은 할머니로서의 일상의 궤적을 가늠해보곤 한다.

성찰질문1: 나는 누군가의 단 한 사람이 될 만큼 깊은 관심을 가져본 적이 있는가?
성찰질문2: 어떤 위기의 순간, 떠오르는 나의 단 한사람은 누구인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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